하나에 422억원?…컬렉터 유혹하는 '세기의 의자들'
■ D의 유혹 &'디자인 액츄얼리&' 2010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A사의 야심작, 아이패드가 최초로 공개됐다. 그날 세상의 눈은 한 남자에게 쏠렸는데, 떴다 하면 화제가 되는 스티브 잡스. 가진 것에 비하면 저렴해도 너무 저렴한 이른바 &'잡스 룩&'으로 패션계까지 접수한 스티브 잡스는 그날도 마찬가지로 불 구경, 싸움 구경보다 재밌다는 &'잡스표 프레젠테이션&'으로 현장을 장악했다. 이날 세상의 시선을 끈 건 스티브 잡스와 아이패드 말고 또 하나 있었는데, 디자인을 중시한 완벽주의자 스티브 잡스의 선택을 받은 검정 소파, 그랑 꽁포르 LC2다. 이름부터 거창한 이 의자는 &'위대한 편안함&' 이라 불리는 1인용 소파로, 20세기 건축 문화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1928년 디자인한 의자계의 스티브 잡스다. 강철 프레임 안에 팔걸이 두 개와 등받이, 시트와 밑받침 각각 한 개의 구조로 만들어져서 요리보고 저리 봐도 완벽한 정육면체의 모양.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완고한 모양새는 생전의 스티브 잡스와 닮았고, 앉았을 때 온 몸으로 전해오는 편안함은 아이패드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와 같았으니, 이보다 적합한 의자가 또 있을까! 아이패드가 공개되고 그 다음 날 A사의 주가는 폭등했고, 가구 시장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의자를 찾는 문의가 전 세계에서 빗발쳤다. 알고 보면 놀라고, 모르고 앉으면 억울할 사연 많은 의자의 세계! 내가 무심코 앉았던 의자와 컬렉터들이 탐내는 대박 의자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자. ◇ &'세기의 의자&' 살바도르 달리의 레다 체어(Leda Chair) 포기할 수 없는 잔인한 매력의 구두, 킬힐! 그 어떤 위협에도 내려오지 않겠다는 여자들의 의지는 독하디 독한데, 킬힐의 원조 격인 의자가 있었다는 사실! 미끈하게 뻗은 여성의 다리와 팔을 올리는 곳에는 살포시 깍지 끼고 싶은 손 하나가 있는 절묘한 디자인! 이것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그린 &'레다 체어&'의 스케치다. 개성 넘치는 달리의 인생과 작품 세계처럼 독특함이 가득한 이 디자인은 1950년대 파리의 카페에 놓기 위해 그려졌다. 실제로 제작돼 파리 카페에서 사용했다고 하는 레다 체어, 우리나라에도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빈티지 클래식 의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A 디자인 뮤지엄! 이곳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의 의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전시돼 있는데, 우리나라 빈티지 가구 컬렉터 가운데 1세대로 꼽히는 김명한 대표의 지난 30여년 간의 소장품들이다. 빈티지 클래식이라 감히 가격을 논할 순 없지만 의자들을 다 합하면 수백억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바로 이 의자들 가운데 살바도르 달리의 레다 체어가 있다. 전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이 의자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단 100명. 몇 해 전, 살바도르 달리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딱 100개만 제작된 스페셜 에디션이기 때문이다. ◇ &'세기의 의자&'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 체어(Egg Chair.1958년 작) 1957년 덴마크의 건축가 아르네 야콥센은 코펜하겐에 들어설 에스에이에스(SAS) 로열 호텔의 인테리어 디자인 총괄을 맡게 된다. 합판을 휘어 만든 &'개미 의자&'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야콥센은 완공을 앞두고 뜻밖의 난관을 만나게 된다. 전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호텔 측에서 전면 수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인테리어 전체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야콥센은 로비에 놓을 의자 하나를 새로 만들어 상황을 역전시키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에그 체어&'였다. 북유럽의 협곡처럼 잘 빠진 라인과 볼륨감 있는 뒤태, 에그 체어에 몸을 맡기면 어깨 넓은 남자가 백허그를 해 주는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는데, 친근한 이름과 달리 가격은 만만치 않다. 천으로 제작한 모델은 1천만원대, 가죽으로 만든 건 2천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서민들 월급으로는 1, 2년을 저축해도 사기 힘든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짝퉁 수요가 진품 에그체어의 역사만큼이나 길게 이어지고 있다고. 가짜의 가격도 천차만별! 쓸 만한 짝퉁 에그체어는 웬만한 명품 백 하나 가격인 백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 &'세기의 의자&' 에일린 그레이의 드래곤스(Dragons) 2008년 프랑스, 패션계와 연예계는 물론 정계를 대표하는 별들의 애도 속에, 전설적인 인물이 세상과 하직했다. 이름이 곧 브랜드였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유행을 선도하고, 배척하던 흑인 모델을 최초로 런웨이에 올리는 등 이브 생 로랑의 삶은 그 자체가 도전과 모험이었고 패션의 역사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 이브 생 로랑의 동성 연인이었던 피에르 베르제는 둘이 함께 모은 평생의 미술 수집품을 경매 시장에 내놨다. 연인의 유지를 받들어 에이즈 재단에 기부하기 위해서인데, 이브 생 로랑의 미술품 경매 사실이 알려지자 그의 소장품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프랑스가 중국에서 약탈해간 문화재인 &'쥐와 토끼 머리 청동상&'에서 야수파의 대가 마티스의 그림 등 경매 사흘 동안 팔린 예술품의 총 낙찰가는 7천억원. 개인 소장품 경매 사상 최고를 기록했는데 쟁쟁한 미술품 가운데 무려 422억원이라는 액수로 낙찰된 의자 하나도 주목을 받았다. 드래곤스라는 이름의 1인용 소파! 의자는 물론 20세기 가구를 통틀어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는데, 422억원이면 웬만한 전투기 한 대를 살 수 있고, 분당의 30평대 아파트 57채를 장만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한 뭉크와 피카소의 그림을 포함, 미술품 역대 탑 10 안에 드는 이 액수가 안락의자 하나의 값이라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손잡이에 담은 가죽소파, 드래곤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던 에일린 그레이의 작품이다. 영국과 일본 예술계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드래곤스 의자에 동서양의 조화를 절묘하게 형상화했는데 아무리 이름값이라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금액. 의자 하나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외국에선 이미 의자들이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미술품으로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선 재테크의 신흥 수단으로 의자가 각광 받고 있다. 세금 탈루의 온상으로 자주 이용되는 그림이나 조각과 달리 의자는 생활 가구라는 인식이 있어서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는데, 부동산 경기도 안 좋고, 주가도 불안한 요즘 갈 곳 없는 돈들이 의자에 몰리고 있다. 가구점을 벗어나 화랑으로, 그리고 21세기 들어선 미술품 경매시장으로까지 진출한 예술 의자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의자가 예술품이고 재테크의 수단이 될 줄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SBS Biz
|
201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