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 김옥빈의 한방 여자 액션은 안된다고요?
[SBS funE | 김지혜 기자]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감독님에게 &'이거 투자돼요?&'라고 물었어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여배우의 위치가 얼마나 축소돼 있는지 알기 때문에 여자가 주인공인 액션 영화가 기획된다는 게 믿기질 않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투자 다 됐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한국판 &'니키타&'가 탄생했다. 정병길 감독이 연출하고 김옥빈이 주연한 영화 &'악녀&'다. 김옥빈은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아 악녀이지만 악녀가 아닌 &'숙희&'를 연기했다. 충무로 상업영화 사상 유례가 없는 여성 원톱 액션 영화다. 여배우가 중심인 멜로물조차 기획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배우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액션 영화에 김옥빈이 중심을 잡았다. 김옥빈은 행운아였다. 그러나 그 운을 받아먹고만 있지 않았다. 여자 액션 영화도 재미있게 잘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준비된 액션 연기와 감정 연기로 보여줬다. &'감독님이 절 믿어주신 거잖아요. 부응하고 싶었어요. 예쁜 인형이 칼 들고 액션하는 느낌을 주긴 싫었죠. 제가 잘해야 다음에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책임감도 컸고요.&' 숙희는 국가 비밀 조직에 의해 살인 병기로 키워진 인물이다. 어느 날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알고 복수에 나서게 된다. 김옥빈은 최정예 킬러라는 캐릭터를 잘 살리기 위해 몸을 만들어야 했고, 다양한 액션 동작을 습득해야만 했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서울 액션 스쿨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칼, 총, 도끼 등 온갖 무기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촬영을 잘 소화하기 위해선 체력 훈련도 중요했어요. 근력을 키웠죠. 지금이야 숙련돼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 찍은 동영상을 보면 주먹질, 칼질 다 어설퍼요. 한, 두 달 지나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액션 연기를 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건 힘을 주지 않으면서 세 보이는 것이었어요. 힘 조절을 못 해 실제로 상대를 때리면 안 되니까요.&' 당시 액션 스쿨에는 &'불한당&' 팀과 &'대립군&'팀도 훈련을 받고 있었다. 김옥빈은 &'액션스쿨에는 에어컨이 없어요. 그때가 한여름이라 엄청 더웠는데 그 팀의 남자 배우들은 웃통 벗고 연습하는데 저는 혼자 땀 뻘뻘 흘리며 연습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세 영화가 개봉을 하게 됐네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악녀&'는 기승전 &'액션&'의 구조를 띤 영화다. 총 123분의 상영 시간 중에서 액션 장면만 90여 분 가까이 된다. 완성된 영화는 단연 액션이 돋보인다. &'대본에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한다&' 정도로 간략하게 표기돼있었어요. 액션 합은 물론이고 카메라 앵글은 알 수가 없었죠. 촬영에 들어가 보니 액션은 장면마다 각기 다르게 디자인돼 있었어요. 1인칭 슛팅 액션, 장검 액션, 오토바이 체이싱, 속옷 비녀 액션 등 다채로웠어요. 카메라 앵글 역시 액션을 빛낼 수 있는 최선의 방향으로 짜여져 있었고요. 완성된 영화를 보며 &'이 정도일 줄이야&'라고 우리 모두 감탄했어요.&' 영화의 오프닝은 숙희의 1:70의 액션신이 연다. 주인공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고 숨소리만 들리는 상태에서 남자들을 거침없이 제압해나간다. 약 10여 분에 이르는 이 롱테이크 장면은 &'악녀&'의 백미로 꼽힌다. &'감독님에게 관객들이 숙희의 얼굴을 궁금해할 것 같으니 조금 보여주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10여 분의 오프닝 중 절반이 지나면 복면이 벗겨지고 숙희의 얼굴이 나오잖아요. 그때부터 등장하는 액션신은 제가 다 직접 소화한 것이에요. 아쉬운 점이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멋지게) 풀샷으로 찍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카메라가 저를 밀착해 찍을 때마다 &'멀리 좀 가세요&'라고 했어요.(웃음)&' 김옥빈은 대부분의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이런 액션 영화에선 최대한 진짜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액션신으로는 후반부 등장하는 마을버스 액션을 꼽았다.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신이라 애착이 더 가요. 좁은 공간인데 움직여야 하는 인원수가 많았어요. 그 장면에서 날아다니는 사람들은 더미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에요. 스턴트맨 오빠들과 좁은 공간에서 구르면서 서로 치고받고 찌르고 때리고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어요.&' 위험부담이 큼에도 불구하고 리허설부터 직접 액션 장면을 소화한 이유에 대해서는 &'연기를 해야 하는 건 배우인데 실제 공간 안에서 연습을 함께 해놔야 슛이 들어갔을 때 느낌이 생생히 살아요. 실제 촬영에서 배우들끼리 붙으면 그건 그냥 액션 합이 아니라 감정 연기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훨씬 켜요. 그래서 많은 리허설을 통해 연기를 미리 맞춰보고 조절해 나간 거죠&' 이 영화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서사의 빈약함, 드라마의 아쉬움에 대해서 질문했다. 김옥빈은 숙희의 정체성과 캐릭터 확립에서 본인이 가졌던 의문과 그 의문을 풀어간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저도 이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감독님에게 그렇게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숙희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는 너무 순수한 것 아니냐고 질문했어요.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이 친구가 트라우마를 가진 상태에서 강렬한 동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걸 잊고 싶어 하기에 오히려 그렇게 순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고통이 심하면 잊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극 중에서 &'아저씨만 내 곁에 있어 주면 난 복수 같은 거 잊고 싶고 싶은데&'라는 대사가 숙희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대사에서 힌트를 찾고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 연기해나갔던 것 같아요.&' 숙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과 분리해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숙희에게 삭제된 감정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과 처음 만나서 한 질문도 숙희와 중상(신하균)의 감정, 현수(성준)의 비밀을 알고 난 뒤 숙희의 반응 등에 관해 물었거든요. 숙희는 제가 이제껏 맡은 인물 중 가장 수동적인 인물이에요. 만약 제가 숙희라면 중상을 캘 것 같은데 그녀는 계속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잖아요. 저와는 많이 다르다 보니 나와 분리해 생각하고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감정 연기에 있어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것은 모성애를 표현하는 부분이었을 터. 김옥빈은 &'우리 영화에 뷰티(Beauty), 비스트(Beast), 베이비(Baby)까지 3B가 나오는데 아기 부분, 즉 모성애 표현이 저로서도 조금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첫 신을 찍는데 저 역시 아기에 대한 것을 많이 놓쳤더라고요. 막막했죠. 저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 마음을 정확히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주변에 친구나 언니들에게 모성애에 관해 물어보고 참고하려고 했어요.&' 김옥빈은 개봉 전 칸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아 해외 반응을 먼저 접했다. 영화 &'박쥐&'로 박찬욱 감독과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을 때가 8년 전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간 칸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땐 제가 너무 어렸고,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이렇게 다시 오기 힘든 곳인 줄도요. 프리미어 상영 후 생각보다 많은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어요. 외신과 인터뷰를 하는데 &'박쥐&'의 태주를 기억해주시는 기자들이 많았어요. &'태주가 여전사가 돼 돌아왔네&'라고 하실 때 뿌듯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국내에서의 홍보 활동 때문에 일찍 돌아와야 했지만, 칸에서 받았던 칭찬과 격려는 큰 비타민이 됐다. 특히 한국의 액션 영화의 진일보라는 칭찬과 그 중심에 있는 김옥빈에게 &'니키타&', &'킬 빌&'에 버금가는 캐릭터였다는 평가는 잊지 못할 보너스였다. 생각해보면 김옥빈도 처음에는 여성 액션 영화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스스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며 &'여자 중심의 장르물은 안 된다&'는 충무로 편견에 멋지게 한 방 날렸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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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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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